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멈춰야 비로소 들린다

가을농장(직장)

by 마음농부 2023. 1. 31. 08:04

본문

 

몇 해 전에 집안의 등을 LED로 전면 교체했다. 집안 곳곳이 그렇게 밝고 환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전기세도 줄일 수 있다고 하니 망설일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밝아진 조명 덕에 집안은 물론 마음도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 집안 불빛이 무겁게 느껴진다. 가까이 있는 글씨를 읽을 때 자연스레 눈살도 찌푸려진다. 전등이 문제가 아니라 40대 언저리에 찾아온다는 노안이 시작된 것이다. 드디어 멀리해야 보이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쇠퇴와 발달의 균형을 통해 적응해나가고 있다. 몸속의 피하 지방은 체온이 발산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에스키모인들은 지방층을 발달 시켜 추위를 이겨낸다. 신체의 표면적이 넓을수록 열이 빠르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사막인들은 가늘고 긴 몸으로 발달 시켜 더위를 이겨낸다. 중년에 들어 시력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면 균형을 잡기 위해 눈을 대신할 다른 감각을 찾아야 한다. 어떤 감각이 대신할지는 잠시 눈을 감고 앞을 보면 제2의 눈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을 감고 앞을 보면 대부분의 시각적 정보는 귀를 통해 들어온다. 바로 귀가 제2의 눈이다. '보기' 중심에서 '듣기'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40대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다.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다양한 생각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앞만 볼 수 있는 시력보다 좌우에서 들을 수 있는 청력이 수렴에 도움이 된다. 중년에 청력 발달이 느려지면 독단, 독선, 아집의 인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들의 특징은 눈을 대신해 귀보다 입이 발달했다.

  입은 방출 기관이라 좋은 정보를 흡수할 기회를 빼앗는다. 물감도 적절한 농도로 섞여야 다양한 느낌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숱한 경험들을 통해 무뎌진 중년의 검은 물감도 농도 조절에 따라 얼마든지 중후하고 담백한 맛을 낼 수 있다. 반대로 과하면 어둡고 칙칙한 맛밖에 안 난다. 시력이 건강하다면 당분간은 다양한 컬러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력이 예전 같지 않다면 이제는 귀를 눈 삼아 또다른 작품을 만들어갈 준비를 해야한다. 씁쓸하지만 그게 중년으로 익어가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시력이 멀어지면 나이 들어감에 마음 한구석이 서글퍼진다. 젊음을 불사르며 지금껏 열렬히 앞만 보고 달린 것이 허무하기도 하다. 어쩌면 멀어지는 시력을 위안삼으려 화려했던 과거를 곱씹느라 입이 발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위한 위안이 타인에겐 볼썽사나울 수 있음을 명심하자. 힘껏 달려온 과거의 나날을 담백하게 하려면 입이 과하게 움직일 때 잠시 멈추자. 멈춰야 비로소 들린다. 들려야 비로소 보인다. 보여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다. 함께 할 때 제대로 된 중후하고 담백한 맛을 낼 수 있다. 중년의 저력은 귀에서 비롯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