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이라 단어는 사회에 나와 계약서를 작성하며 처음 접했다. 무려 20년 전의 일이다. 갑을문화가 없어져 가는 줄 알았건만 잉크로 파트너라 쓰고 겉으로는 갑질로 진화했다. 나쁜 버릇은 빨리 배우고 오래간다던 어른들의 말에 동의를 해야하나. 무언가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산업화 시기엔 자연을 지배하려 들었고, 군사정권에선 권력으로 국민을 지배하려 들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강대국은 약소국을 지배하려 한다. 더 강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진 것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베풀고, 나누면 삼대가 망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침에 홍콩의 대배우 주윤발에 대한 짤막한 기사를 읽었다. 전 재산 8,000억을 기부하고 자유롭게 산다는 소식이었다. 물질적 갑이 아니라 사회적, 정신적 갑의 모습이 아니겠냔 생각이 들었다. 갑질을 하면 할수록 정신적, 사회적으로 평안과 온기를 불러오는 것이 갑이 지향할 점이다.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해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은 꼰대 갑이다. 대기업 총수,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온 할머니, 할아버지 기부 소식을 가끔 접한다. 차이가 있다면 대기업 총수는 법정이나 수감소에 다녀온 뒤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당신들이 쉬쉬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고 똘갑과 마주한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으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한마디로 불쌍하다. 누가, 무엇이 저 사람을 똘갑으로 만들었을까. 상대를 지배해 얻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 영위하고자 하는 삶이 어떤 것일까? 가족들 앞에서는 환하게 웃는 우리와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존버해야 살아남는 시대라 저항 의지를 짓누른 탓일까. 얼마 전 직접 당해보니 저항에 대한 의지는커녕 저항, 반대, 거절이 무엇인지 잊고 사는 나를 발견했다. 화로 시작해 한심함을 거쳐 저항 의지에 불이 켜졌다.
을의 반란으로 갑갑해할 갑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니 가끔은 갑갑하게 갑을 가지고 놀 필요도 있다. 똑같이 못 들은 척, 못 본 척, 모르는 척으로 말이다. 분명 수많은 을 중 또 다른 을로 옮겨가 갑질을 해 댈 것이다. 갑과 을이 하루에 뒤바뀌는 세상이라 영원한 갑, 영원한 을도 없다. 결국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 갑을 모두가 지향해야 할 점이다. 갑님! 을님! 어쭙잖은 협상 이론, 알량한 자존심, 맹목적 지배욕을 버립시다. 이게 힘들면 뚫린 귓구멍으로 들려오는 상대방의 소리를 끝까지 들은 후 갑질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