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근황 토크를 가졌다. 대화의 막바지는 사뭇 철학적이다. 사는 게 무엇인지, 왜 사는 것인지, 잘 사는 건지 등 굵은 한숨을 경쟁하듯 토해낸다. 그래도 만남의 마무리는 건강하자로 마무리된다. 건강해야 존버라도 하잖냐는 누군가의 말에 다들 호탕한 웃음으로 공감을 드러낸다. 개처럼 고생해 정승 노릇은 해봐야지 개처럼 죽으면 너무 억울하다는 말은 약간의 경각심마저 들었다.
언젠가 형광등을 바꾸려고 와트(W)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작은 키가 아니건만 아무리 올려다봐도 또렷이 보이질 않는다. 의자에 올라서서 전구 바로 아래까지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여전히 불투명했다. 노안이다. 노안이 시작된 지 제법 지났지만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쩌면 자가치료로 회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는지 모른다. 전구 교환은 결국 휴대폰으로 촬영해 확대를 한 후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같은 경험자끼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틀 전 병원 진료에서 노안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즉시 안경을 맞췄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나를 위해 돋보기안경을 써봤다. 가까이 있는 깨알 글씨가 이토록 선명할수가... 새로움에 안경을 썼다 벗었다 했더니 어지럼증이 생겼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아버지 안경을 내가 쓰다니 나이 듦에 서글퍼진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안경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다. 안경 너머로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듯해 맘이 짠하다. 나이 듦을 인정하고 수용을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어색하다.
인정과 수용을 부정하는 이유는 인정할 만큼의 그릇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 길이 구만리이건만 바퀴가 벌써 탈이나면 어쩌자는 건지. 이젠 몸으로 하는 생산적인 활동을 줄여나가야 한다. 아니 속도를 줄여야지 활동을 줄일 순 없는 노릇이다. 정말 인행 후반전의 시작을 맞이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가슴을 짓누른다. 친구들과 나눈 철학적인 이야기가 선인들의 얘기가 아니라 정말 현실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면 흔쾌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대신 잦아질 고장을 대비한 환상적인 후반전 전략을 짜야 한다.
안경을 처음으로 쓴 날. 어색한 기분에 그냥 끄적여본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주눅 들지 말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달래고 달래고 달래고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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