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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와 나누기의 출발점

보옴농장(자녀)

by 마음농부 2023. 2. 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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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이종 조카의 탄생은 신혼이던 우리 부부에게 기쁨이자 경이로움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발 도장을 직접 제작해 선물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녀석이 벌써 중학교 3학년이란다. 이 조카에게 어릴 적 단짝 같은 장난감이 있었으니 바로 핑크빛 네발 자동차 ’뿡순이‘였다.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뿡순이도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 뿡순이도 벌써 사춘기 나이에 접어들었다. 장난감 나이 15세 이상이면 상상이 될 것이다. 바퀴는 근력이 떨어져 인(人) 모양으로 벌어지고, 관절염으로 곳곳에서 삐걱거린다.

 가야 할 때를 알고 버려질 뿡순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했건만 현실과는 먼 기대였다. 볼품없는 형체만큼 색까지 빛바래 버리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더군다나 이젠 초등학생인 아이가 앉기도 버겁거니와 앉으면 바퀴가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여러 차례 버리기를 시도했지만, 딸은 뿡순이와 이별할 마음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자기의 소중한 장난감을 왜 아빠가 버리려 하느냐고 살벌하게 덤비면 늘 후퇴해야만 했다. 부녀전쟁 덕분에 뿡순이는 집안 곳곳으로 잦은 이사를 해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애나 어른이나 채우기에 길들어져 있어 버리기에 서툰 것은 매한가지다. 남들이 뭐래도 풍요 속의 빈곤은 부러움이지만 빈곤 속의 빈곤은 끔찍함이란 걸 겪은 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 남들이 가지면 나도 가지고 싶고, 남이 누리면 나도 누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거기다 부익부 빈익빈은 현실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실현되는가 말이다. 부러움의 부익부 대열에 서기 위해서는 1만 시간 이상의 노력을 채우라고 한다. 이렇게 채우기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세상에서 버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연 채우기의 쳇바퀴를 탈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철 스님의 무소유를 실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채우기의 반대말을 버리기가 아니라 나누기로 생각하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채우기와 버리기, 소유와 무소유의 중간 영역이 바로 나눔이기 때문이다. 선인들은 채우기의 한계를 익히 알고 나눔을 강조했는지 모른다. 콩 한 쪽도 나눠 먹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나눔에 인색한 이유는 그만큼 채우기에 길들어져 있음이다.

  채우기에 길들어짐은 비단 아이들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옷장에는 옷들이 몇 해 동안 다이어트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냉장고에는 기다리다 지친 식자재들이 상한 냄새로 불쾌감을 드러낸다. 창고에는 각종 매체의 현란한 마케팅에 현혹되어 구매한 물품들이 장기간 대기발령 중이다. 모두가 채우기로 인해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들이다. 나눔의 이로움을 모르겠냐만 현실은 아이나 어른이나 어렵긴 마찬가지다. 나눔이 힘겨운 이유를 나눔에 대한 출발점부터 다시 재점검해보면 쉬워지려나.

  채운다는 것은 시간과 함께 물리적 공간에서 심리적 공간으로 옮겨간다. 입을 순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옷, 당장 먹지는 않지만 존재만으로 풍족한 식자재, 당장 쓰이진 않지만 든든한 물품. 모두 공간의 채움에서 마음의 채움으로 전이된다. 따라서 비움의 출발점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딸이 뿡순이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형편없이 낡은 자동차가 아니라 함께한 추억 때문이다. 그렇다면 뿡순이를 나누거나 버릴 것을 설득할 것이 아니라 아이의 추억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깨달음은 왜 항상 뒤늦게 찾아오는 걸까.

  일방적인 강요 끝에 분리수거장에 뿡순이를 버리고 집에 들어섰을 때 이불을 덮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마음을 먼저 나눴다면 뿡순이의 빈자리를 아빠의 자상함으로 조금은 채울 수 있었을 텐데 이미 늦어버렸다. 이렇게 시나브로 채우기에 집착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버리거나 나눌 때엔 마음부터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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