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 아내와 아이들의 진로에 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실 문과를 졸업한 우리 부부는 이번 난리에 위기감을 제대로 느꼈다. 그나마 주변에 기술이라도 있는 사람은 우리보다 덜 힘들었다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얘기 도중 “우리 딸도 IT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나?” 했더니 밥 먹으며 듣고 있던 딸아이가 뭔지 모를 종이를 가져와 식탁에 쫙 펼친다. 종이엔 그동안 자기가 적어놓은 꿈 목록이었다. 식탁에 펼치며 “휴~ 난 꿈이 많다고~” “화가, 피아니스트, 선생님, 과학자... 언제 다하냐고요오~~~?” 딸아이의 사뭇 진지한 표정과 천진한 말투가 식탁을 들썩이게 했다.
평소 딸아이가 이것저것 찔끔찔끔하는 것이 내심 탐탁지 않았다. 한 가지에 진득하게 몰입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진로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식탁에 펼친 꿈 목록을 보며 내가 너무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눈에는 집중력 저하로 보이지만 아이에게 찔끔찔끔은 더 넓은 세상을 바쁘게 살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말로만 마음껏 꿈꾸고, 도전해 보고, 실패해 보라고 주문했던 이중적인 내 모습이 창피하기도 했다.
부모는 부모 교육을 받지 않고 어느 날 부모가 된다. 그래서인지 부모의 말에 고분고분하면 최고의 아들딸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충돌이 생기면 설득과 이해는 지식일 뿐, 실제는 지혜롭지 못한 언행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이들과의 대화가 줄어듦은 부모에게 보내는 신호일 텐데 실타래를 풀기가 녹록지 않다. 과연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답답할 노릇이다. 가부장적 부모상은 아닌 듯하여도 필요할 때가 있고, 친구 같은 부모상만을 고집하는 건 아닌 듯 싶고, 부모노릇 만큼 어려운 게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껏 두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부모의 큰 역할은 3가지다. 첫째, 앞에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 둘째, 옆에서 함께 하는 길동무 역할. 셋째, 뒤에서 지원하는 후원자 역할이다. 길잡이를 하려면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길동무가 되려면 공감할 줄 알아야 하고, 후원자가 되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셋 중 하나로는 어떤 부모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를 채우기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도 아이의 해맑은 표정은 진통제, 천진한 웃음소리는 영양제, 사랑해 한 마디는 보약이 아니던가. 답이 없는 부모노릇 이지만 끝까지 해보련다. 와칸다 포에버가 아니라 부모 포에버다. 으라차차~~!!
아버지, 어머니가 아빠도 그립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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