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가 완화된 후 남이섬을 오랜만에 찾았다.주말이라 오랜만에 환한 표정이 제대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옆에 듬직해 보이는 번지점프대에서도 사람들이 간간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렸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번지점프대 끝에 사람이 보이면 일제히 시선은 그곳으로 쏠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점프하면 마치 자기가 뛰어 내린 마냥 함께 탄성을 내질렀다. 해보고 싶다는 사람과 못할 것 같다는 사람으로 순간 소란스럽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건만 도전과 포기의 두 마음이 동시에 꿈틀대는 풍경이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불확실하다. 불확실은 정형화된 대처 방법에 대한 불확신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휴스턴대학의 브레네 브라운(BreneBrown) 교수는 한 강연에서 두려움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취약성이 비자발적으로 드러날 때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취약성이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지금까지의 방어기제가 오작동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자칫 방어기제의 틈에서 취약성이 노출된다면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일이나 상황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수치심에 대한 요인들을 인정해버리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비자발적 노출에 대한 불안 요소를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두려움에 대한 근원을 과감히 줄이거나 제거했기 때문이다. 바꿔말해 취약성을 자신의 일부이자 가치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생각에서 행동까지의 심리적 거리를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다. 결국 새로운 도전에 대해 망설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잃을 게 없으면 용감하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불확실한 일이나 상황 앞에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취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여긴다. 그래서 인정과 수용보다는 방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처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를 흔들어 놓을지 모른다. 즉 취약점 노출에 대한 압력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어쩌면 두려움이 가중되면 최선의 방어는 불확실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자기합리화다. 이렇게 취약점을 부정함으로써 두려움을 키워 회피를 자기합리화로 둔갑시키는 것이 포기를 만드는 사이클이다.
반대로 취약점을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두려움을 최소화하고 자신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도전하게 만드는 사이클이다. 도전과 포기의 갈림길은 자신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 결정짓는다. 용기란 과감히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힘이라고 한다. 도전 앞에서 머뭇거릴 때 용기를 가지라는 말은 내려놓으라는 말과 같다. 자존심, 위신... 조금 살아보니 튼튼하게 지키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쌓고 허물기를 유연하게 하는 사람이 강하고 멋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