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모컨에는 ‘재생, 정지, 앞으로, 뒤로’라는 네 가지의 주요 기능이 있다. 리모컨의 핵심 역할은 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시간이라 생각되면 건너뛸 수 있고, 필요한 시간이라 여겨지면 되돌리고, 멈추고,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일상에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삶의 리모컨’이 내 손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2006년에 개봉한 애덤 샌들러 주연의 ‘클릭’이란 영화 소재가 바로 ‘삶의 리모컨’이었다. 삶의 속도를 남들보다 빠르게 돌려 성공을 맛보지만 빠른 속도 만큼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린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며 ‘지금’이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누구나 초월하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그 출발은 변함없이 지금이다. 삶의 리모컨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 한 지금이라는 시간에 충실하는 것이 영화 속 리모컨을 거머쥐는 방법이다.
허나 영화 속 리모컨을 갖지 못하기에 사람은 다양한 현실과 변화로부터 나를 위로하고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현실을 수용하기 위한 유연한 방어기제와 함께 회피성 임시 방어기제도 가동된다. 자신을 지키는데 정도가 있겠냐만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할수록 심리적 방어의 벽은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그 벽은 나만의 세계를 더욱 확장 시킴으로써 타인과의 공감력 약화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결국 현실에서 잦은 회피는 나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코로나로 이후 온 식구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 온 가족이 집 안에서 배려해야 하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가 피곤하다. 하지만 덕분에 가족들의 방어기제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삶의 리모컨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모든 순간은 지나기 마련이다. 불필요한 방어기제를 드러내기 보다는 지금에 좀 더 의미 있는 알맹이를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빠르게 돌리기에 급급해 놓쳤던 가족과의 일상을 함께 담아보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리모컨에는 ‘지금’이라는 재생 버튼밖에 없다. 있을 때, 때가 왔을 때 슬기롭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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